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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
제목 김영철과 광천동 시민아파트-들불의역사 27P- mail 등록일 2010-07-15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473
 

김영철과 광천동 시민아파트

들불야학이 교실로 사용하였던 광천동 성당 옆에는 70호 규모의 3층 연립아파트 3동이 ㄷ자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는 광천동시민아파트가 있었다. 그곳은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과 부랑민을 위하여 시에서 지었지만, 규모가 너무 영세하여 이름만 아파트지 판자촌과 다를 것이 없었다. 1호당 2개의 방과 부엌 겸한 통로로 10평이 채 못되었다.

또한 각 층 입구에 화장실과 세탁장을 공동으로 갖추어서 세면과 빨래, 혹은 쌀을 씻는 것도 모두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어서 들어가면 역한 냄새와 메탄가스로 눈이 따가 웠다.

 들불야학이 설립되기 전인 1977년 10월, 낙후한 지역의 개발을 위해 설립된 전남협동개발단(단장, 광주 YMCA 조아라 회장)에서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김영철 간사를 지역운동 담당자로 파견하였다.

1948년 생인 김영철은 당시 30세로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두로 겪었으며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과 평생 함께 살겠다는 봉사와 희생정신이 충만해 있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두 살난 아들을 데리고 1977년 11월에 아파트 A동 216호에 입주를 하였다.

 그는 먼저 아파트의 주민들을 종교별로 , 학교별로, 직업별로 나누고 175가구의 각 호마다 수입, 지출, 부채 등의 기초조사표를 만들어 종합개발사업 계획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청년회를 부활시켰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어린이 주말학교를 열었다.

또한 적자로 폐업상태에 있던 광천 삼화신용협동조합을 인수받아 차츰 신협을 정상화 시켰다. 그의 활동은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A동 반장을 맡았지만 나중에는 광천동 11통 합동반상회에서 새마을 지도자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78년 7월, 어느 날 그는 광천동 여기저기에 야간학생을 모집한다는 벽보를 발견하였다. 그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가 기획한 종합 개발 계획서에도 야간중학교 건립이 있었다. 그는 여력이 없어 당분간 야간 중학교 설립을 보류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기회가 생긴 것이라 여겼다. 그 곳이 바로 들불야학이었다. 그는 들불야학의 입학식에 참석하여 지역주민을 대표하여 축사를 하였다. 그리고 강학들과 친해지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형제처럼 가까워 졌다. 그는 2기부터 생활 강학으로 참여하여 시사 과목과 레크레이션을 맡아 수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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