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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남도청사수 윤상원은 아름다운 분-오마이뉴스 이종호- mail 등록일 2010-11-08
작성자 김연옥 조회수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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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 사수 윤상원은 아름다운 분
망월동 묘역, '역사 전달 미흡' 아쉬워"

[인터뷰] 5·18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지낸 신계륜 의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을 역임한 신계륜 민주당 의원은 매년 봄 광주 망월동 묘역에 들러 세 분의 묘소에 참배를 한다. 윤상원, 박관현, 그리고 또다른 한 분. 모두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5·18 광주민주항쟁의 주역들이다. 고 윤상원씨는 80년 5월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 맞서 최후까지 싸우다가 희생됐으며 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장이었던 고 박관현씨는 82년 5·18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옥중에서 단식하다가 끝내 숨졌다.

신 의원이 이들의 묘소를 찾는 건 이들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박관현씨와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동창에다 광주고 재학 당시 학생회장 선거에서 경쟁후보로 맞붙을 뻔 하기도 했던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80년 5월 18일 당시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친구 박관현을 만나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아 다시는 그의 얼굴을 만져보지 못했다.

고 윤상원씨에 대해 그는 “그 분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신념에 찬 대표적인 분”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윤씨가 전남도청이 진압되기 하루 전날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너희는 지금 총을 버리고 집으로 가라. 너희들은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봤던 것을 기록하라. 너희들이 성인이 됐을 때 싸우라’고 했던 연설문구를 떠올리면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고 술회했다.  

광주시민들이 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항의하며 일어났던 그해, 신 의원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다. 비상계엄 확대 선포로 1급 수배자로 '찍혀'있던 신 의원은 항쟁 하루 전날인 5월 17일 밤 쉽게 도망치기 위해 고향인 광주로 내려갔다. 5·18 항쟁이 일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던 상황에서 뭣모르고 기차칸에 올라탄 것. 그리고는 공수부대에 의해 진압이 완료된 27일까지 약 열흘간 광주 송정리에서 학살의 참혹한 현장을 그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해야만 했다. 수배조치로 숨어지내야만 했던 그는 시민군의 대열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한 것에 대해 여전히 부채감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5·18 망월동 묘역은 친구의 묘가 자리한 곳이자, 자신의 분노가 묻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84년 출소하자마자 갈 데가 없어 가장 먼저 찾은 곳도 바로 망월동 묘역이다. 신 의원은 그곳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올바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때문인지 화려한 공원으로 변모한 지금의 공원이 그에게는 여전히 여색한 모양이었다. 그는 특히 묘역을 관리하는 소장을 향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윤상원씨, 박관현씨 묘소 앞에 쌓여있는 편지마저도 3개월 후에 버려버리는, 역사적 의미를 외국인에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관리인들이 마음에 찰 리 만무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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