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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 민중의시각에서연구-오마이뉴스 강성관기자- mail 등록일 2010-11-15
작성자 김연옥 조회수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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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현재화 노력 빈곤하다"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 민중의 시각에서 오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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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9월 '윤상원'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개소했다. 바로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소장 정재호)가 그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윤상원은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투사회보>를 제작해 배포했으며 '광주시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 끝내 그는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진압군의 총탄을 맞고 숨진 운동가다.


 

▲ 연구소 '5·18연구반'이 전적 지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3 오마이뉴스 강성관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는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을 계기로 오월 열사와 윤상원 열사를 추모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개소했다. 하지만 '추모'사업보다는 오월항쟁에 대한 연구, 한국민주주의 운동 등에 대한 자료 수집과 정리, 학술 세미나 등 연구 사업이 중심이다.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 회원은 80여 명. 이 중 20여 명이 연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오월 항쟁에 대한 자료와 많은 연구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추모사업과 행사 등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윤상원의 이름을 건 연구소를 개소했을까.


"오월항쟁에 대한 연구 성과가 있지만 여전히 한계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전반적이고 총론적인 수준의 연구는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시민사회의 시각에 편향돼 있다. 그리고 오월은 너무 과거 중심 사고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기념과 추모 차원의 행사 등에 너무 집중돼 있다. 오월항쟁 관련 순례도 마찬가지다. 추모의 성격이 강한 묘지·기념관·자유공원이 중심이다." 정재호 연구소장이 생각하는 오월항쟁을 둘러싼 연구는 물론 정신계승, 추모에 대한 단상이다.


그는 "오월을 현재화하려는 노력이 빈곤하다"고 비판했다. 이것이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의 시작인 듯하다. 그렇다고 그는 '이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혀 반대하고 나서고 싶지는 않다. 다양한 접근과 나름대로의 계승을 부인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정 소장은 선배 윤상원과 함께 들불야학은 물론 80년 5월 '투사회보'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그 항쟁의 '계승자'로 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정 소장은 "오월항쟁 대부분의 연구물이 시민사회의 시각에 편향돼 있다"며 "실은 오월항쟁은 70년대 한국산업화와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민중의 폭발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월항쟁을 주도했던 민중성, 민중적 시각을 놓치고 있다"며 "큰 줄기에서 정리되고 있지만 특정단체나 운동조직 영역, 예를 들면 오월항쟁에서 빈민들이 한 역할을 중심으로 본다든지, 혹은 노동운동의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고민을 담아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에 참여하는 이들은 연구소 개소 이전인 200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21세기>라는 '광주민중항쟁 20주년 기념 논총집'을 발간했다. 주요 논지는 오월항쟁을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시민운동, 지역문화 등 각 분야에서 '어떻게 현재화할 수 있느냐'였다.


정 소장은 "오월항쟁을 현재화하고 항쟁의 21세기 담론을 시작한 것은 우리 연구소가 앞서가고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시민운동의 시각이 강하다보니 인권·평화 등만 강조되고 투쟁의 주체였던 민중의 문제 즉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문제, 통일문제가 경시되었다"고 강조했다.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는 광주민중항쟁 홍보 책자 등에서 볼 수 있는 '순례' 지도와는 달리 '격전지' 지도도 제작했다. 답사가 추모성을 강조하는 묘지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장성과 계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윤상원'이란 '투사'의 이름을 달리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상원 열사는 80년 당시 일부에서 수습위원회를 구성해 항쟁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고 '투사회보(이후 민주시민회보)'를 제작해 저항과 투쟁을 주장했다. 그리고 수습대책위원회를 대신해 민주시민투쟁위원회를 결성, 결국 최후의 항쟁 지도부와 함께 27일 도청에서 산화해 갔다." 정 소장과 연구소는 아마도 '수습'보다는 '투사'로 최후를 맞이했던 윤상원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는 개소한 지 3년째. 그 동안 <광주민중항쟁과 21세기>라는 연구서 출판, 들불기념사업회와 함께 <들불의 역사> 자료집 발간, 윤상원 열사 관련 답사, 들불야학과 오월항쟁·민주화운동 등 사회운동 관련 자료 수집, 학술 강좌 등을 개최했다.


그러나 아직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는 '가난한' 듯하다. 사람이 그렇고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어 살림도 빠듯해 보인다. 2~30년 전의 자료들을 수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탓도 있고, 20여 명의 연구인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임이 아니다보니 여러 가지로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열정만큼은 '풍족'해 보였다.

 

 

▲ 이상호 화백과 연구소가 제작한 '5·18민중항쟁 전적 지도'. ⓒ2003 이상호 화백 -사진자료실첨부

지난 2001년 처음으로 제작했던 '5·18민중항쟁 전적 지도'를 5월 들어 새롭게 제작했다. 이 전적 지도는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호 화백이 담당했다. 전적 지도를 통해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가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지 그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5·18관련 안내 책자들이 '상무대 영창'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반해 전적 지도는 '5·18수용소 상무대'라고 다르게 부르고 있다. 또 이번 전적 지도에는 시민군들이 군사훈련을 했던 '전투훈련장 광주공원', '지역방위대 학원동'이 추가됐다.


이들 지역은 그 동안 5·18민중항쟁을 서술하면서 크게 다루지 않은 부분이다. 전적 지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5·18민중항쟁 현장의 표기 명칭을 곱씹어보면 연구소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정 소장은 "오월항쟁에 관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예산지원받아 연구를 할 생각은 없다"면서 "오월을 현재화하는 민간 전문연구기관으로서 성장해 갈 것이다"고 말했다.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는 올 9월 30일 창립일에 맞춰 학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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