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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윤상원 평전-이기원 mail 등록일 2010-11-15
작성자 김연옥 조회수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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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평전> 젊은 넋 윤상원, 꽃으로 되살아나다

               2008/06/18 16:55 5월의 작품들/윤상원 열사

젊은 넋 윤상원, 꽃으로 되살아나다

[서평] <윤상원 평전>


 이기원 (jgsu98) 

   

▲ <윤상원평전> 책표지 


ⓒ 풀빛

서른의 꽃다운 나이로 무자비한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붉은 피 꽃잎처럼 흩뿌리며 죽어간 윤상원에 대한 기억을 미국인 브래들리 마틴 기자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분명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내 마음 속에 그릴 수 있는 단 한 명의 희생자가 있다. 그는 바로 5월 26일 외신기자회견을 열었던 시민군 대변인이다. 나는 광주의 도청 기자회견실 탁자에 앉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 젊은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그의 두 눈이 나를 향해 다가오자 나는 그 자신 스스로도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중략)


…그의 눈길은 부드러웠으나 운명에 대한 체념과 결단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강한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의 두 눈이었다.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의 눈길이 인상적이었다. (18~19쪽)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간직했던 윤상원, 그는 서른의 짧은 생애 동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미래가 보장된 주택은행이란 직장을 포기하고 노동자들과 더불어 생활했고, 자신의 자취방과 수입과 의식과 시간을 공동체를 위해 제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윤상원과 함께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다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숨을 거둔 일곱 열사들을 일컬어 '들불 7열사'라 부른다고 한다. 밤하늘 북두칠성처럼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 살았던 윤상원, 박용준, 박관현, 신영일, 김영철, 박효선, 박기순 등 '들불 7열사'의 넋은 지금 망월동 국립묘역에 잠들어 있다.


평전을 읽다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불꽃처럼 살았던 윤상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서 살았던 짧지만 뜨거운 삶이었다. 불꽃처럼 살았던 삶에 녹아 있는 고뇌와 아픔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짧았던 첫사랑 이야기, 가난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는 아들의 고민, 탄압 속에서 위축되는 들불야학을 둘러싼 마음고생, 도청에서 들불야학 1기 졸업생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설득할 때 어쩔 수 없이 흔들리던 목소리, "…너희는 제발 집으로 돌아가거라."


윤상원이 떠난 지 2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의 모교인 전남대학교에서, 광주사례지오고등학교에서, 그의 생가에서, 기념관에서 크고 작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꽃잎처럼 산화한 젊은 넋이 부활의 꽃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윤상원 평전>도 새 옷을 갈아입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90년대 초반 <들불의 초상 윤상원 평전>이 간행 후 17년 세월이 흐른 뒤 개정판이 나오게 된 것이다. 1980년대 5월 광주민중항쟁에서 죽음을 맞기까지 온몸으로 항전했던 윤상원이 보여준 불꽃같은 삶을 27년이 지난 지금 되살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호재, 임낙평 지음/풀빛/20,000원

 

 

책소개

해방광주의 마지막 새벽을 동트게 한 주검이 되어……

“여러분! 드디어 전두환 살인집단은 이 시각 현재 우리를 죽이기 위해 탱크를 앞세워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야수와도 같이 야음을 틈타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도청을 비워줘야 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들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이 사는 길입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뭉쳐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의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자랑스런 기록을 남깁시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세 시, 31살의 청년 윤상원은 전남도청에 모인 시민군을 향해 계엄군에게 무력으로 대항하여 도청을 사수하자는 피 맺힌 연설을 남긴다.


윤상원.


5·17 계엄확대 조치로 5월 18일에 광주로 진입한 계엄군에 맞서, 당황하는 광주 시민들을 시민군으로 무장시켜 진정한 의미의 ‘민중 항쟁’을 이루어 낸 현대사의 주인공. 그러나 그 이름은 그가 남긴 위업과 희생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18은 한 명의 영웅보다는 계엄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쇠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것도 모자라 총알받이가 된 5·18의 광주시민들이 솟구치는 분노와 온몸을 휘감는 절망감에 하나 되어 거센 항쟁의 불길을 만들었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폭압적인 정부의 힘에 대항해 수많은 시민들이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뭉쳤고, 이것은 민주화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한 동력이 되었다. 때문에 윤상원이라는 이름보다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5·18이 남긴 더 큰 유산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윤상원을 기억해야 하는가?


1957년 전남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윤상원은 평범한 성장 과정을 밟고 전남대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를 사로잡은 것은 학문보다는 청년운동에 몸담은 선배들과의 만남과 들불이라는 이름의 야학이었다. 철없이 방황의 시간을 가졌던 그가 이제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에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주택은행에 입사하고도 결국 6개월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런 유신독재의 그늘 아래에서 공교육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 노동자와 빈민들에게 배움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전두환의 5·17 계엄확대 조치로 계엄군이 쇠파이프와 총칼로 광주 시민들을 위협할 때 야학의 동지들을 모아 시민군의 대오를 정비시키고 몇 차례의 궐기대회를 지휘한다. 4일간의 시민 투쟁으로 계엄군이 물러가는 해방광주가 도래하자 정부의 조치가 눈속임이라는 것을 감지한 윤상원은 전남도청에 모인 시민군을 독려하며 무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광주를 사수한다. 그리고 해방광주 6일째의 새벽, 그의 예상대로 공수부대는 도청으로 잠입했다. 윤상원은 그들의 총에 맞아 쓰러졌고, 그의 주검은 상반신이 불탄 채 성명불상자로 처리되어 계엄당국이 동원한 인부들에 의해 가매장되었다. 더불어 해방광주의 7일도 마감한다.


5·18 항쟁의 시작과 끝을 지키고 30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윤상원. 그의 삶은 철저히 나보다는 우리가 먼저였다. 그는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생활의 안락함을 버리고 험난한 삶 속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으로서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음에도 윤상원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더 큰 포부를 안고 있었다. 또한 그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자신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청년이었다. 계엄군이 광주를 장악한 5월 18일 이후 많은 대학의 학생회 간부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다른 지방으로 피신을 갔으나 윤상원은 위기일발의 그 상황을 회피하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비시켰다. 투사회보를 제작해서 시민들의 투쟁 의지를 불살랐고, 산발적으로 흩어진 항쟁 대열의 선두에 서서 시위군을 조직적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시민군의 진정한 선봉장이 된 윤상원은 해방광주를 마지막까지 지킴으로써 민주화의 진정한 선봉장이 된다.


개인을 버리고 민중을 생각한 사람.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만드는 사람. 민주화에 대한 굳은 의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해낸 진정한 투사, 윤상원. 그렇기에 우리는 윤상원을 통해 5·18의 의미를 배우고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가감 없이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기록《윤상원 평전》

《윤상원 평전》은 5·18 항쟁 이후 십 년이 지난 1991년에 《들불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그 후 절판된 책을 출간된 지 20여년이 다 된 지금 다시 복간하게 되었다. 잊혀져 가는 5·18의 인물 윤상원을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상원 평전》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첫째, 단순히 한 인물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윤상원은 1970년대 박정희 유신 정권과 전두환의 5·17 군사쿠데타, 그리고 7일 동안의 해방광주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살았다. 그 안에서 그는 문리대학생에서 플라스틱 공장 위장 취업자로, 들불야학의 강학으로, 시민군을 지휘하는 선봉대장으로 변화해갔다. 이 책은 이러한 윤상원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책에서는 몇몇 쪽에서 간략하게, 그나마 정치사에 한정되어 다루어진 현대사지만 이 책에는 윤상원의 가족과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한 삶을 통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1980년 5월 18일 이후의 열흘여의 시간은 독자로 하여금 숨 막히는 위기일발의 순간들에 들어가 있는 듯 생동감 있게 서술된다. 주인공이 역사의 한 부분이거나 객관적 관찰자로서 역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장면 바로 그 속에서 먹고, 입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투쟁하는 하루하루가 이 책에 그려져 있다. 그 현실감 있는 삶을 통해 사건들을 기록하기 때문에 《윤상원 평전》은 그 자체가 현대사의 생생한 재현과 같다.


둘째, 이 책에서 윤상원의 삶이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생생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글의 지은이가 윤상원과 함께 야학 활동을 한 윤상원의 후배라는 점에 있다. 이 글의 지은이 중 한 사람인 임낙평은 윤상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터전이었던 들불야학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간 윤상원의 동지였다. 그는 윤상원과 거의 동거동락하다시피 하며 들불야학이 노동자와 빈민 들에게 올바른 배움의 터가 되도록 노력했고, 사회운동의 주체로서 일했다. 그런 그의 눈과 귀를 통해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이었으니 평전에 소개된 일화들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운동가 혹은 사회운동가로서의 윤상원만이 아니라 정과 의리가 가득한 인간 윤상원을 묘사할 수 있었다.


《윤상원 평전》은 지금의 우리에게 잊혀진 5·18을 되새기게 하는 책으로서 그 가치가 있다. 제대로 된 말도 못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던 유신독재의 시기에 광주의 시민들이 왜 화염병을 만들고 총을 찰 수밖에 없었는지, 그 커다란 반동의 힘이 한국의 현대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이 책은 윤상원의 짧지만 순탄하지 못했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이제는 우리가 광주의 넋을 자유롭게 만들자.

5·18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민주화를 가져온 뜨거운 폭발음이었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시커먼 재가 되고 붉은 피로 얼룩졌던가.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 모습 앞에서 마르지 않는 눈물을 쏟아내야 했던가. 그러나 30년 동안 5·18의 의미는 서서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더불어 이들에 대한 애도와 감사의 마음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망각되었다고 그 사실이, 그것이 남긴 유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뿌리박고 편안히 서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들의 피로 심은 자유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안히 쉬고 있다.


이제는 그 자유가 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편안함으로 망각된 것이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상기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뿌린 피와 눈물로 이 땅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윤상원이라는 이름과, 광주의 이름과, 5·18의 이름을 되살려보자.그리고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새겨보자. 그리하여 윤상원과 광주의 혼이 지금에라도 세상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만들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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