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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관현 ]
제목 광주공단노동자실태조사와 박관현-들불의역사중 31P- mail 등록일 2010-07-15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17
 

광주공단노동자실태조사와 박관현

1978년 12월, 들불야학 강학회의에서 광주공단 노동자들의 생활을 파악하기 위하여 실태조사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노동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실태조사는 기본적인 과정이라는 것이 합의된 결론이었다. 실태조사를 추진할 사람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들불야학에서는 1명만 참여하기로 하고 전남대와 조선대에서 사람을 찾아내기로 하였다. 며칠 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야학에서는 신영일 강학, 그리고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 중에서 박관현 , 이세천, 장석웅, 박병섭, 위승량, 박용안, 최금표, 안진 등이 참여하였다. 실태조사반은 들불야학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사업으로 조직의 형태를 갖추었다.


 광주공단 노동자 실태조사를 통해서 들불야학과 박관현의 인연이 맺어졌다. 박관현은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고향의 초등학교를 마친 후 명문인 광주동줄, 광주고등학교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였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 법대를 두 번이나 낙방을 한 후 나이가 차서 군대에 가고 말았다. 군대를 마치고 제대한 후에 그는 서울대가 아닌 전남대 법대에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차석 합격이었다. 법대에 들어가자마자 박관현은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에만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런 관현을 실태조사에 끌어들인 사람은 고교 동창이었던 전남대의 장석웅이었다.


 사법고시 공부 외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박관현이 실태조사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예상 외의 사건이었다. 관현은 학생들 관심의 초점인 미팅이나 카니발은 물론이고 동아리 활동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검정 고무신에 군복에 검정색 물을 염색한바지를 입고 독서실만 출입하는 박관현은 마치 사법고시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박관현이 실태조사에 참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박관현이 고시공부를 하는 많은 대학생들과 다른 점이었다. 박관현은 실태조사가 노동자들의 생활에 관한 조사라는 것을 알자 며칠 간 고민한 과정은 있었지만 결국 과감하게 참여한 것이다.


 실태조사는 자료를 입수하기 위하여 대학 도서관과 시청 노동청, 노총, 상공회의소, 공단 관리사무소 등 많은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모든 일은 발로 뛰어야 했으며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박관현은 어려운 일일수록 솔선수범으로 도맡아 처리하였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상대방에게 믿음직스럽고 정감있게 대하는 예의바른 관현이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조사 전기간을 거쳐서 박관현의 초지일관된 성실성과 책임감, 솔선수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언행일치는 실로 모든 실태조사반들에게 조용한 감동을 주었다.


 박관현은 이 기간 동안 노동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념으로 운동에 투신한 윤상원을 만났으며 지역주민운동에 전념하고 있던 김영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을 인근에서 지켜보며 강학들과 학생들의 헌신과 정열에 심취했다.


 실태조사는 1979년 2월까지 3개월에 걸쳐서 진행되었으며 1979년 5월 조사보고서는 전남대학 신문에 네 차례로 나누어 게재하기로 계획되었으나 첫 번째와 두 번째 내용이 나간 후 내용이 주는 파문이 학교 밖 사회로 번져나가자 사찰당국의 압력에 의해 연재는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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